극심한 업황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전선업계에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든 전선업계는 그동안 원자재 시장 불안, 공정위 과징금 폭탄, 불법·불량 전선 등 악재가 중첩되며 고전을 면치 못해왔다.
올 들어서도 물량 가뭄 속에 공공시장을 중심으로 알루미늄 케이블 수요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 업체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중소 전선업체들 사이에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작년보다 더 어렵다”= 지난해 전선 제조업체들은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적자 투성이였다. 올해 턴 어라운드를 기약했던 기업들은 1분기를 넘어서자 망연자실해하는 모습이다.
특히 중소 전선업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악재 속에서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연말과 올 초까지 진행된 한전과의 연간 단가계약도 다자 경쟁 구도로 전개되며 단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품목별로 낙찰단가는 예년보다 최대 10% 이상 하락했다.
특고압 일부에 알루미늄을 도체로 쓰는 네오케이블(TR CNCE-W/AL)이 적용되며 연간 구매물량도 1000억원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관수뿐만 아니라 민수시장도 좀처럼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건설업 지표가 호조세로 돌아서면서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체감경기는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업의 양호한 지표는 지난해 기저효과에 따른 것일 뿐 실제 물량 발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공공기관 이전 등 정부차원의 프로젝트가 완료 단계에 접어들어 민수 부문은 물량 고갈 상태”라고 말했다.

◆AL케이블, 업계에 대형 악재= 한전을 시작으로 철도시설공단도 배전선로에 알루미늄 케이블을 적용키로 하면서 전선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전은 올해 약 500억원 규모의 네오케이블을 발주, 업체들은 내달부터 본격적인 납품을 앞두고 있다.
철도 노선에도 처음으로 알루미늄 케이블이 적용된다.
철도시설공단은 최근 중앙선 용문~원주 간 복선전철, 호남고속철도를 시작으로 앞으로 10개 사업 구간(케이블 물량 4791km)에 알루미늄 케이블을 적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철도시설공단은 동 케이블을 알루미늄 케이블로 대체할 경우 약 236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알루미늄 케이블의 수요 확대는 어떤 형태로든 전선업계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전선 제조업체가 두려워하는 것은 매출 감소에 따른 자금난이다. 매출이 줄면 당장 은행권에서 금리인상과 대출 억제 카드를 꺼내게 돼 업체들은 자금운영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수요처의 구매방침을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게 납품업체의 입장이지만, 업계는 그동안 AL케이블의 도전율이나 생산성, 재활용 문제 등을 이유로 알루미늄 케이블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네오케이블의 생산성은 구리케이블에 비해 30% 가량 떨어지는 반면, 손실률은 구리대비 2배 이상이라 경제적 효과도 크지 않다는 게 제조업계의 설명이다. 또 수분 침투로 인해 AL케이블이 동에 비해 수명도 짧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과정에서 불량이 날 경우 70% 이상 회수가 가능한 동과는 달리 알루미늄은 대부분 폐기해야 한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거대수요처의 구매 방침을 제조업체들이 바꾸기는 어렵지만 AL케이블은 전선업계의 경영을 압박하는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이라며 “올해 실선로 적용에서 야기되는 여러 문제점들을 면밀히 살펴 구매 확대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