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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공사협회]메이커부터 유통상까지 전선업계 ‘만신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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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업계가 불과 일주일 사이 상처투성이로 전락했다. ▶본지 7월 30일자 10면, 8월 4일자 1면 보도
메이저 제조업체들이 대거 연루된 담합 비리에 이어 전선에 사용할 수 없는 재료로 불법전선을 만들고 유통시킨 업자들이 무더기로 검거된 것.
전선업계는 연이어 터진 대형 악재에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담합이어 불법전선, 꼬리 무는 대형악재
지난달 28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호남고속철도 전력선 입찰에서 담합한 국내 8개 전선회사 임직원 27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8개 기업엔 국내 전선시장을 대표하는 1~5위 기업이 모두 포함돼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전선회사는 지난해 5월 공단에서 발주한 호남선 KTX 전력선 입찰을 앞두고 사전에 담합을 모의하고 투찰 당일 서로 직원을 보내 교차 감시하는 방법으로 입찰을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낙찰기업은 담합업체에 물량을 나눠주거나 세금계산서를 주고 받으면서 7~13% 수수료를 챙기는 방법으로 이익을 분배했다”고 말했다.
담합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5일엔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불법·불량 전선을 대량으로 생산, 유통시킨 43명이 검거됐다.
경기경찰청은 전기용품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전선 제조업체(G사와 또 다른 G사, U사) 대표 3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중간 유통상 4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제조기업 3곳은 이른바 ‘마찌꼬바’로 불리는 소규모 영세 업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2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화성·파주지역 공장 등에서 알루미늄에 구리를 씌운 CCA(Copper Clad Aluminium)를 재료로 20억원 상당의 불법전선을 제조, 중간 유통상에게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증 규격 자체가 없는 굵기의 전선 90억원 어치를 임의로 제조하는 등 총 4만4000㎞의 전선을 불법으로 생산, 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4만4000여km는 지구를 한 바퀴 감을 수 있는 길이다.
이들은 일반 전선의 3분의 1 수준으로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CCA로 전선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CCA는 구리보다 도체저항이 높아 누전, 합선 등 화재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전선 재료로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구조적 모순, 곪을 대로 곪았다
불과 일주일 남짓한 시간차를 두고 잇따라 터진 대형 비리에 전선 시장참여자들은 직접적 연루 여부를 떠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업계가 과거의 잘못을 털고 공정한 경쟁 ‘룰’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실 담합과 불법·불량 전선 문제는 업계의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설비과잉, 즉 수급 불균형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거의 모든 중소 전선기업은 보유 설비를 배 이상 증설했다. 이 결과 현재 가장 낮은 기술 수준의 기기선부터 저압선, 고압선까지 30여개 기업이 모두 엇비슷하게 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연이은 설비투자로 밥상 자체는 키워놨지만 업황이 꺾이자 업체끼리 먹을거리를 놓고 치고받을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된 셈이다.
호황기였던 2005~2010년을 지나자 수급 불균형은 곳곳에서 업계의 발목을 잡았다. 기업들은 물량 감소와 극심한 가격경쟁 여파로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공장가동률이 줄자 이미 늘어난 캐퍼를 맞추기 위해 밑지더라도 저가 수주에 앞다퉈 나선 것도 이 때부터다. 금융권의 자금압박을 견디기 위한 불가피한 방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가장 부러움을 사던 대기업 OEM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 십년간 LS그룹의 OEM만으로 살림을 꾸려가던 한국전선이 지난해 7월 전격 부도처리된 것은 OEM 업체의 한계와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해외 경쟁력이 거의 없는 다수 중소기업은 내수 시장에서 이른바 3사, 5사 체제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대기업도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자 상당수 기업들이 담합이나 불량 전선 등 ‘악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게 된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외형을 늘리는 것이 곧 미덕이던 시절은 오래 전 끝났고 과잉설비는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면서 “더 이상 반칙은 통하지 않는다는 뼈저린 교훈을 새기고 공정한 경쟁,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시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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