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KTX역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울산 울주군 서생면 ‘해맞이로’. 경치 좋고 바다 바람 좋기로 유명한 이곳은 신고리 원전 3호기와 4호기 건설현장이다. 원전 설계상 대부분의 공정이 완료된 상태지만, 지난해 원자력계를 크게 뒤흔들었던 ‘케이블 사건’으로 인해 관련 제품을 전량 교체하느라 공정이 지연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문제가 불거진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에 대해서는 가동정지 및 전량교체를 명령했고, 신고리 3·4호기에 대해서는 부품을 재시험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신고리 3·4호기에 설치된 JS전선 케이블에 대한 화염시험과 냉각재 상실사고 시험 결과 기준을 불만족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케이블 전면 교체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오느라 고생하셨죠? 대부분의 원자력발전소들이 인적이 드문 바닷가와 접해있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합니다. 그래도 운이 좋으시네요. 아직 연료 장전 전이라 평소에는 보기 힘든 원자로 안까지 구경할 수 있으니까요.” 김준오 한수원 신고리 제2발전소 차장이 얼굴 한 가득 웃음을 지으며 기자를 맞이한다. 발전소 내부에 들어가니 작업자들이 천장과 바닥을 뜯어낸 채 케이블 교체 작업에 한창이다. 새 케이블은 미국 RSCC사 제품으로, 케이블 길이는 3호기 674km, 4호기 555km로 총 1229km다. 이를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은 900억원이 넘는다. 3호기 가동 지연으로 발생하는 전력 판매 손실도 하루 십수억원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신형경수로(APR1400) 원전 시대 돌입 신고리 3·4호기는 국내 최초로 건설되는 설비용량 140만kW급 신형경수로(APR1400) 원전이다. 수출노형인 UAE 원전의 참조모델이다. 발전기와 터빈 등 대부분의 설비가 국내 기술로 제작됐다. APR1400은 국가선도기술 개발과제로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2346억원을 투입해 독자 개발한 노형으로, 한국표준형 원전(OPR1000)보다 안전성과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개발 초기부터 해외수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APR1400은 기존 노형보다 운전·정비 편의성, 시공성, 경제성이 대폭 향상됐다. 설비용량은 기존 100만kW급 노형 대비 40% 늘렸고,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했다. 건설계획 단계부터 안전기준과 검사, 시험 등 제반 요건을 엄격히 적용했다고 고리원자력본부 측은 전했다. 주요특징을 보면 만약의 중대사고에 대비해 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설계개념이 대폭 반영됐다. 원자로용기 직접주입, 비상노심냉각수유량 조절장치, 파일롯트구동 안전밸브, 원자로건물내 핵연료재장전수조 등이 그 예다. 또 내진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원자로 건물과 보조건물에 대해 공동매트 기초방법을 적용했다. 온배수 영향도 최소화했다. 냉각수로 이용하는 바닷물을 동해바다 수심 15m 깊이에서 끌어들인 후 다시 수심 15m 깊이에서 배출하는 친환경적 수중 취·배수 방식을 택했다. 온수로 인한 바다 생태계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해안선을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인 공법으로 평가된다. ◆사고 대비 안전장치 대폭 향상 신고리 3·4호기에는 다른 원전과 차별화되는 곳이 있다. 바로 원전 운전의 핵심인 주제어실이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 대신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발전소 정보 분석은 물론 감시와 제어 업무를 컴퓨터 화면을 통해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컴퓨터 기반의 워크스테이션으로 구성된 첨단 자동화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각종 운전지원시스템의 통합으로 운전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인적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등 발전소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발전용량은 기존 표준형원전의 100만kW급에서 140만kW급으로 높였고, 주요핵심기기의 수명도 40년에서 60년으로 늘렸다. 설계단계에서부터 수명을 늘리면 안전성이 높아지고 유지·보수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진과 해일로 인한 침수로 비상전력 공급이 중단될 경우에 대비해 이동형 비상발전차량을 갖췄다. 해일로 인해 비상전력계통과 안전설비가 침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방수문을 설치하는 등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속조치 이행에 만전을 기했다. 대형 쓰나미로 인한 침수로부터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안방벽을 증축했고, 원전 사고 시 폭발의 원인이 되는 수소를 즉각 제거할 수 있는 피동형 수소제거설비도 갖췄다. 김준오 차장은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신고리 3·4호기 건설 사업을 하루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안전한 원전, 기술력이 우수한 원전의 탄생을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장스케치)'함께 행복해지는 길’ 고리원전, 지역주민 지원사업 활발 한국수력원자력 고리본부는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전원개발을 촉진하고 발전소를 원활하게 운영하는 한편, 지역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에서다. 현재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관한 법률’에는 원자력발전소나 수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발전사업자는 자기자금으로 지원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에 한수원은 발전량 1kWh 당 0.25원을 발전기로부터 반경 5km 이내 지역에 있는 기장군 장안읍과 일광면, 울주군 서생면과 온양읍을 지원하는 사업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13개 읍·면에 지역경제협력사업과 지역문화진흥사업에 한해 사업비의 30% 이내에서 지원하는 중이다. 고리본부는 올 해 역시 145억2800만원의 사업비를 발전소 주변지역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고리본부는 ▲교육 및 장학지원사업 ▲지역경제 협력사업 ▲주변 환경 개선사업 ▲지역복지사업 ▲지역문화진흥사업 ▲기타 사업자 지원사업 등 6개 사업군으로 나눠 주변 지역을 지원하는 중이다. 교육 및 장학지원사업은 지역 우수인재 육성, 기숙사 마련, 영어마을 연수, 우수교사 유치, 장학사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역경제 협력사업에는 지역 특산물 판로지원, 지역산업의 경쟁력 강화 지원 등이 포함돼 있으며, 주변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바다정화, 도로정비 및 주거환경 개선 등 주변지역의 생활환경을 쾌적하게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복지시설 지원, 육아시설 건립·운영, 체육시설 마련, 마을버스 운영지원 등 지역주민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는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문화행사 지원, 문화시설 건립 지원 등 지역주민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 나가는 중이다. 고리본부는 앞으로도 지역홍보 등 지역특성을 살리고 주민 복지를 증진시키는 등 지역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지역경제자립 유도 ▲지역복지기반 구축 ▲지역인재 육성 ▲지역문화진흥을 목표로 삼고 주변 주민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나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전 확정된 신리마을 "외지사람 배만 불려주는 꼴" “한수원한테 돈 뜯어내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 욕하는 거 우리도 알고 있어. 그러나 정작 마을 주민들은 많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 묶어 놓은 배 중에 마을 사람들 꺼는 한 척도 없으니까 말 다했지. 외지 사람들 배만 불려주고 있는 꼴이야.” 착공 예정인 신고리 5·6호기 옆에 위치한 신리마을. 신리마을은 한수원 고리본부와의 합의를 통해 전 주민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지원을 받는다는 소식에 외지인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오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어선 몇 척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었던 자그마한 항구에는 외부 사람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묶어 둔 배들이 빼곡하게 들어차기 시작했고, 땅만 있으면 크고 작은 조립식 건물들을 세워대는 통해 주민들이 정성들여 심어놓은 상추와 고추밭은 엉망이 됐다. 80가구였던 마을은 이제 180가구로 늘어났지만, 사람 찾아보기는 더 어려워졌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슈퍼 앞, 삼삼오오 앉아있는 할머니들에게 ‘마을 이전’에 대해 묻자 대뜸 “여기 땅 사서 건물 지으려고 그래?”라는 날 선 대답이 튀어나온다. 기자라는 말에 그제야 경계를 푸는 모습에 그동안 외지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시달림을 당했을지 충분히 예상됐다. “기자 아가씨, 한수원 사람들이랑 친해? 만나면 한수원 이주 지원금으로 돈 버는 사람들은 다 외지사람들 뿐이라고 전해줘. 그 사람들도 고충이 많겠지만, 마을 주민들 위주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신리마을에서 70 평생을 살았다는 할머니들의 한숨 섞인 부탁에 바닷바람이 더 끈적끈적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