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공공공사 발주에서 공사비 예정가격 작성의 기초자료로 표준품셈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원가계산에 의해 예정가격을 산정하는 표준품셈은 급변하는 시공현장의 상황과 신기술·신공법 등을 신속하게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실적공사비 제도를 예정가격 산정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시행된 건설공사에서 산출한 공종별 계약단가를 기초로 하는 실적공사비는 물가변동 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고 제대로 된 보정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시공업체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돼 온 상황이다. ▲ 시공품질과 안전 확보하기 위한 제도 수정·보완 노력 요구 전문가들은 원가절감과 기술개발을 함께 견인한다는 실적공사비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낙찰률을 반영하지 않은 시장가격을 실적단가 산정 과정에 적용하거나, 실제 물가변동률 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보정지수를 마련하는 등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실성 있는 공사비가 책정돼야 최상의 시공품질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건설협회 등을 필두로 한 전기시공업계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업계에서는 실적공사비 제도를 전면 폐지하거나 현실에 맞도록 대폭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전에는 실적공사비에서 일부 손실을 보더라도 표준품셈 등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었으나, 최근들어 실적공종단가가 확대되면서 공사의 예정가격이 하락해 기업들의 수익구조는 물론 건설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중소 시공업체가 계약을 따내기 위해선 무리를 해서라도 낮은 금액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데 실적공사비 제도로 인해 실적공종단가의 가격이 이듬해 계약의 예정가격을 산출하는 기준이 된다” 면서 “이는 낙찰금액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는 만큼 현실적 여건 등을 충실히 반영해 적정 공사비를 보장할 수 있도록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제도 운용상의 문제와 착시효과도 한 몫 관련 전문가들은 실적공사비 방식의 자체가 가진 맹점보다 법, 제도가 운용되는 시스템 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오랜기간동안 표준품셈을 기반으로 한 공사비 산정방식에 젖어있다보니 실적공사비 방식에 대한 발주기관과 업계의 이해가 부족했다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등 해외 대부분 국가는 이미 수행한 계약단가를 이용해 공사비를 산정하는 방식을 오래전부터 시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실적공사비 제도가 전기공사업계에 도입된 2007년을 기점으로 국내 건설물량이 대폭 감소하는 등 당시의 경제여건과 맞물려 시공업체들의 수익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제도의 단점이 더욱 부각된 것이란 해석도 내놨다. 건설경기가 불황을 맞은 시점과 실적공사비 제도를 적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중첩되면서 ‘실적공사비 제도 때문에 기업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착시효과를 냈다는 설명이다. ▲실적공사비와 표준품셈의 장점을 고루 활용하는 전략적 대안 필요 일각에서는 표준품셈과 실적공사비 제도의 장점을 적절하게 섞어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미 진행된 유사 공사의 계약 단가를 예정가격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실적공사비 방식과 전문적인 기술이나 자격을 요하는 부문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표준품셈을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한다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와 예정가격 결정기준이 비슷한 일본에서는 품셈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1993년부터 표준보궤와 시장단가방식(원도급자와 하도급자 간 거래되는 공종의 단가를 예정가격 산정의 기초자료로 활용)을 병행해서 운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이 발주하는 단가공사를 비롯해 시공업체들의 전문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공사의 경우엔 실적공사비 제도가 아닌 표준품셈을 활용토록 하는 등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