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제기되는 위기론 속에서도 중대형 건설사의 해외 러쉬가 지속되는 이유는 뭘까?

　국내 건설시장에서 희망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 바람까지 가세하면서 중대형 건설사들의 물량·수익성은 급전직하다. 중소건설업계는 물론 정부 내부에서도 ‘앞으로 대형사는 국내시장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업계 일각에서는 중대형사들이 해외시장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국내시장에서 밀려나는 것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국내 건설시장 상황 어떻길래

　작년 국내 수주액은 101조5000억원으로 2005년(99조4000억원) 이후 7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올해 7월 국내 누적 수주액은 45조892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6.4%나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국내 수주액이 90조원대를 유지하기가 힘들 수 있다는 연구기관의 분석도 나온다.

　그나마 물가상승률을 배제한 경상금액 기준이며 불변금액 기준의 작년 수주액은 73조9000억원으로 2002년(83조1000억원)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다. 가장 최근 지표인 건협의 올해 7월 말 기준 지난 1년간 수주액(85조474억원)은 직전 1년(116조7310억원)보다 31조6836억원(-27.1%)이나 줄었다.

　중대형사의 수주 타격이 더 크다. 건설산업정보센터가 집계한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50위권 건설사들의 올해 7월 누적수주액은 전년 동기보다 54.1%나 폭감했다.

　한건협 관계자는 “중대형사 매출을 뒷받침한 주택과 민자 수주가 동시에 급락한 데다 경제민주화 바람 아래 그룹물량 지원마저 여의치 않아 해외시장 외엔 답이 없는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ㆍ중ㆍ소 건설사 간 실적 격차도 줄고 있다.

　대한건설협회가 분석한 ‘1사당 공사실적(기성액 기준)’은 상시종업원 300인 이상 중대형사 100여곳이 2008년 7533억원에서 작년 6819억원으로 9.5% 감소한 반면, 300인 미만 중소건설사들은 같은 기간 51억원에서 61억원으로 19.6% 늘었다.

　경영사정을 반영한 2008년 영업이익률도 대기업이 6.3%로 중소기업(4.3%)을 능가했지만 작년에는 중소기업(3.3%)이 대기업(3.1%)을 앞질렀다. 세전 순이익률도 2008년 대기업(5.3%)이 중소기업(2.6%)의 2배가 넘었지만 작년에는 중소기업(1.8%)이 대기업(1.0%)의 2배가량으로 뒤집었다.

　건협 관계자는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 약화의 이면에 범건설업 차원의 물량감소와 수익성 악화가 자리하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건협이 올해 7월까지 국내 공공공사 수주물량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대형건설사들이 주력하는 국영기업체(국가 및 지자체 산하 공기업)의 수주액 감소폭(-43.9%)이 가장 컸다. 한국은행이 분석한 상반기 기준 공기업 금융부채(402조4000억원)까지 고려하면 중대형사들의 건설물량은 더욱 줄어들 형편이다.

　/해외건설 국내시장 대체 가능할까

　통일 변수를 빼면 업계가 기댈 곳은 해외뿐이며, 이에 목을 매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해외건설은 경제위기 때마다 경기침체를 완충하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위기를 맞은 직후에 해외수주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1981년 137억달러, 1982년 134억달러, 1983년 101억달러)을 넘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108억달러), 1997년(140억달러)에 100억달러를 다시 넘은 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에 비약적 성장세를 이었다. 2008년 476억4000만달러, 2009년 491억5000만달러, 2010년 716억달러, 2011년 591억3000만달러, 2012년 649억만달러다.

　그러나 화려함의 이면에 자리한 미수금과 손실은 철저히 감춰줬고 국정감사 과정에서 그 실체가 일부 드러났을 뿐이다. 그리고 올해 1분기 대형건설사들의 잇따른 ‘어닝쇼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건설단체 산하의 연구기관인 건설산업연구원이 ‘장밋빛 일색의 해외건설 붐’에 이례적으로 경종을 울린 것도 같은 이유다. 해외공사의 완공시기가 가까울수록 ‘어닝쇼크’ 대열에 합류할 중대형사가 불어날 것이 뻔하게 보이는 탓이다.

　건산연의 한 관계자는 “해외건설 리스크 세미나 때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연구원 내부적으로 해외사업 리스크 분석 툴을 적용한 바로는 그룹사 등의 외부지원이 없으면 곧바로 무너질 정도로 심각한 상황의 대형사 숫자도 상당했다”며 “엄청난 리스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정부가 국내 SOC투자는 감축 일변도로 나서면서 건설사들에는 해외로 나가라고 종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해외건설 효과도 국내건설에 비해 회의적이다.

　대형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건설사로선 같은 1조원의 수주액이라도 국내수주냐, 해외수주냐에 따른 국민경제 효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해외수주 1조원이라고 해봤자 현지 협력사 및 근로자를 쓰고 현지 자재·장비를 활용하면 실제 국내 건설사가 손에 쥐는 것은 몇 퍼센트의 수익액과 공사실적에 그치지만, 국내수주 1조원은 고스란히 국내 경기 전반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의 요구는 간단하다. 현 시점에서 절실한 ‘지속가능한 해외건설’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보다 정교한 해외건설정책 운용과 국내외 수주환경의 일체화를 위한 발주제도 개선,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속적인 국내 SOC투자액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다른 건설사의 관계자는 “해외프로젝트 수주 때는 대형사 간 담합을 암묵적으로 권장하는 반면, 국내공사 담합에는 가차없는 게 정책 현실이다. 4대강 담합수사만 해도 건설사·설계사를 합쳐서 올해 검찰에 불려간 임직원만 1000명이 넘을 정도”라며 “글로벌 스탠다드는 국내외 건설정책과 그 결과물인 수주환경, 나아가 SOC투자정책이 일관성을 갖는 것이지,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국진기자 ji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