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 법무지식 갖추고 각종 사업 진행 시 서면계약 필수

최근 경영환경 개선과 수익기반 확충을 위해 해외시장 진출에 관심을 갖는 정보통신공사업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철저한 시장조사와 체계적인 준비 없이 해외진출을 모색하다가 뜻하지 않게 손해를 보거나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더욱이 원활한 사업 추진을 도와주겠다는 현지인을 맹신하거나, 앞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인과 어설픈 동업을 할 경우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보통신공사 전문업체인 (주)삼흥정보통신(대표이사 오영규)의 사례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다가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삼흥정보통신이 해외사업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지난 2006년이다. 이 회사 오영규 사장은 과거 중동건설 붐이 일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 공사현장에서 알게 된 한 지인으로부터 L씨를 소개받았다.
L씨는 필리핀에서 건설자재를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기존의 자재유통업 외에 통신장비 설치 등에 관한 정보통신공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L씨 입장에서는 정보통신공사에 관한 실무지식과 기술, 경험이 부족해 공사 관련업무를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사업 파트너가 필요했다.   

정보통신 시공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삼흥정보통신은 L씨에게 좋은 사업파트너가 되기 충분했다.

L씨는 삼흥정보통신에 동업을 제안했다. 삼흥정보통신은 이 제안을 받아 들여 에릭슨 등 필리핀 현지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정보통신공사를 하청 받아 함께 일을 하고 수익을 나누기로 했다. 하도급 공사에 따른 이윤 15% 중 L씨가 7%를, 시공을 맡은 삼흥정보통신이 8%를 갖는 구조였다. 공사에 소요되는 제 비용은 삼흥정보통신에서 대기로 했다.

현지에서의 공사수주는 불규칙했지만 그런대로 사업의 명맥은 유지됐다. 그러던 차에 L씨가 새로운 제안을 해 왔다.

단순한 동업형식으로 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전체 지분을 삼흥정보통신에서 정식으로 인수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삼흥정보통신은 잠시 망설였지만 L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필리핀에 진출했기에 아무래도 현지 사업체를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더 유리하지 않겠냐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엄청난 시련의 단초가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 경영권을 넘겨주겠다는 L씨의 말만 믿고 지분인수를 결정했지만, 정확한 지분인수 비율이나 차후 경영권 승계과정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지 않은 게 큰 패착이었다.

더군다나 삼흥정보통신은 지분인수 및 관련비용 지급 등에 관한 제반업무를 진행하면서 정식으로 서면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우를 범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당시로서는 L씨가 모든 걸 알아서 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L씨의 요청과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모든 일이 원만히 진행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엇보다 지분인수 비율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삼흥정보통신은 필리핀 현지법에 따라 회사의 지분보유 한도가 필리핀인 60%, 외국인 40%로 제한돼 있는 사실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

차후 삼흥정보통신은 현지인의 지분을 어떻게 해줄 것인지를 L씨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L씨는 “필리핀인은 걱정할 것 없다”며 삼흥정보통신을 안심시키고 “지분 보유자를 곧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L씨는 “어차피 현지 대리인 성격의 ‘더미(dummy·허수아비)’가 필요하고 필리핀인들은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사업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삼흥정보통신 측에서도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더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지분보유자를 교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줄은 몰랐다.

지분인수에 따른 삼흥정보통신의 비용부담도 컸다. 지분인수 대금으로 5만 달러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지분 인수를 위해 5만 달러라는 거금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업 확장을 위한 미래의 투자로 생각했다.

하지만 L씨의 당초 제안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서, 지분인수 대금 지급만으로 삼흥정보통신에서 독자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건 어려웠다. 더욱이 경영권 이양을 약속했던 L씨도 20%의 지분을 갖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삼흥정보통신은 5만 달러라는 큰 돈을 들이고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이 4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속을 끓이게 됐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필리핀 사정에 썩 밝지 않았고 현지 발주처를 상대로 공사를 수주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도 삼흥정보통신에 큰 걸림돌이 됐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삼흥정보통신은 L씨와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L씨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 외에도 급여로 월 300만 원을 지급해줄 것을 요구했고, 삼흥정보통신도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 지분인수에 관한 약정은 2007년에 이뤄졌는데, L씨는 2년여가 지나도록 지분 이양에 관한 당초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이처럼 지분배분에 관한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삼흥정보통신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삼흥정보통신이 실질적인 회사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게 타당했지만, L씨는 마치 자신이 회사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L씨는 삼흥정보통신에 대한 지분양도를 차일피일 미루는 와중에도, 개인적으로 쓸  돈이 필요하다며 약 8000만 원의 자금을 조달해 줄 것 요청했다.

그동안 L씨에게 정기적으로 급여 성격의 돈을 지급해왔고 거액의 지분인수 대금까지 건넨 삼흥정보통신 입장에서는 참으로 황당할 수밖에 없는 요구였다.

이처럼 지분배분과 운영자금 등에 관한 다툼이 끊이질 않으면서 삼흥정보통신은 필리핀 진출 후 6년여의 시간이 지나도록 완전한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당초 좋은 동업자로 출발했던 L씨와의 사이엔 메울 수 없는 골이 생겼다. 더욱이 삼흥정보통신과 L씨가 현지에서 필리핀인들을 통해 법적 소송을 진행하면서 양쪽의 인연은 돌이킬 수 없는 악연으로 변했다.

오영규 삼흥정보통신 사장은 “필리핀 기업환경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철저한 법무지식을 갖추지 않은 채 우리나라 사람과의 정과 의리만을 믿고 공동사업을 진행한 탓에 이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며 “무엇보다 제대로 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고 한탄했다.

오 사장은 “최근 국내 경기 침체로 새로운 경영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해외시장 개척을 꾀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는 유사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