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는 이틀 뒤 면제대상 삭제 시행규칙 입법예고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똑같은 정책사안에 대해 상반되는 개정안을 추진해 건설업계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정위와 국토부는 불과 이틀 간격으로 서로 다른 내용의 건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면제대상 개선안을 각각 내놓았다.

　공정위가 7월30일 행정예고한 ‘건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면제대상 고시 개정안’에는 대금지급 보증면제 원수급자를 현행 회사채 A-등급에서 A0등급으로 상향조정하는 조항이 담겼다. 지급보증 의무 면제대상 평가 때 현행 회사채 평가에 더해 기업어음 신용평가도 추가로 반영함으로써 기업어음 A20 이상업체의 지급보증 의무도 면제한다는 게 공정위 방침이다.

　국토부가 이틀 후인 8월1일 입법예고한 ‘건설산업기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보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교부의무를 면제하는, 최근 연도 회사채 평가 A등급 이상 조항이 삭제됐다. 신용평가 등급에 관계없이 모든 건설사에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을 의무화하겠다는 게 국토부 의지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면제대상을 바꾸는, 동일한 문제를 놓고 공정위는 회사채 A0(기업어음 A20 이상 포함) 이상 등급이면 계속 면제하겠다는 개정안을, 국토부는 그마저 면제하지 않겠다는 개정안을 발표한 셈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부처가 다르다 해도 같은 박근혜 정부인데, 이틀 차이로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개정안을 내놓는 게 말이 되느냐”며 “취득세 문제를 둘러싼 부처간 엇박자로 대통령의 강력한 질책을 받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을 보이는 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국토부와 공정위간 엇박자는 이뿐이 아니다.

　공정위가 지난 7월3일 입법예고한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된 지급보증 면제대상 하도급계약금액 축소조항(현행 4000만원 미만→1000만원 미만 하도급공사)만 해도 국토부가 작년 12월5일 이미 개정(건산법 시행규칙 제28조)을 마무리한 사안이다. 공정위의 관련 조항이 바뀌지 않아 건설현장에서 시행되지 못함에 따라 국토부가 공정위에 관련 규정 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이제서야 움직였다.

　공정위의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대상 고시가 하반기 중에 바로 시행되고 국토부 개정규칙이 내년 2월6일부터 적용되면 건설업계는 공정위 고시 시행 후에는 공정위 기준을 따르고 내년 2월6일부터는 두 기준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처지다.

　건설단체의 관계자는 “하도급법령과 건산법령이 경합할 때는 하도급법령이 우선이므로 내년 국토부 규칙이 개정돼도 공정위 기준이 우선이라고 봐야 한다”며 “다만 하도급법 적용대상(원사업자 연간 매출액 30억원 이상, 원사업자의 시평액·상시종업원 수가 하도급자보다 많은 원하도급관계)이 아닌 하도급관계에는 새 규칙 적용 여지가 있지만 적용대상이 A등급 이상 대형사들이므로 예외적으로 국토부 규칙을 적용받는 사례는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런 혼선과 관련해 어느 부처의 잘못이 클까? 일단 국토부가 지난 6월14일 발표한 ‘건설산업 불공정 거래관행 개선 종합대책’에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면제대상 개편안을 발표한 점을 고려하면 이를 무시한 공정위의 잘못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엇박자의 이면에는 업계와 정부의 현실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공정위의 고심이 담겼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행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면제업체는 30곳이다. 공정위의 새 기준을 적용하면 A-등급 3개 업체(한진중공업, 엔에이치개발, 지에스네오텍) 중에 기업어음 A20등급 이상인 한진중공업을 빼고 2개 업체만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을 받아야 한다.

　반면 국토부 규칙을 적용하면 30개사 모두 지급보증 대상이다. 과거 동일한 내용의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안(서병수 새누리당 의원)으로 발의됐을 때 국회 국토위의 분석보고서를 보면 회사채평가 A 이상 건설사까지 지급보증을 의무화하면 연간 105억원 가량의 혈세가 낭비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증수수료는 건설공사 예정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도급사 피해 구제효과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A-등급업체는 사례가 있지만 A0등급 이상 업체가 경영위기로 등급이 강등된 사례는 없다. 결국 피해완충 효과가 미미한 사안에 혈세 105억원을 투입해 건설공제조합과 서울보증의 수입만 늘려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게 업계 지적이다.

　부처간 엇박자가 나타난 근본 원인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하도급법령 체제 탓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의섭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도급법령을 별도로 둔 국가는 일본과 이태리가 고작이며 그마저 건설하도급은 해당법령에서 배제하고 있다”며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건설 하도급을 2개의 법령으로 규제하니까, 이런 엇박자가 나오는 것이다. 해외 선진국처럼 건설 하도급을 건설산업기본법령에 통합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김국진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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