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산 저압차단기의 국내시장 진입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산 저압차단기 업체들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3개월 동안 시장에 유통된 중국산 제품은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섰다. 실제 판매율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3배 이상 높아졌다. 국산의 절반수준인 가격에 ‘저가=저질’이라는 편견이 사라진 결과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나 개인 건물주들이 가격대비 중국산을 더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지난해부터 주택용저압차단기에도 IEC 국제규격이 적용되면서, 값 싸고 기준에도 부합하는 중국산 저압차단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 역시 한국시장에 본격 진입하기 위해 생산 공장을 증축하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저압차단기 제조업체 대표는 “원가를 아무리 줄여도 중국산의 가격경쟁력은 따라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국내 중소기업들의 시장을 중국 업체들에 빼앗기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소연했다.
대다수 업체들은 앞으로 5년 이내에 중국이 국내 저압차단기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 2011년 말 정부 차원에서 관련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제조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차단기 산업성장 방안을 마련, 올해 안에 한국 시장 점유율을 25%까지 높이고 2020년엔 세계 차단기업계 2위국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국내 저압차단기 업계는 중국산 저가제품에 대한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가뜩이나 공급과잉과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부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저가의 중국산 제품들마저 국내로 쏟아져 들어와 벼랑 끝까지 내몰리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책이다.
몇몇 중소기업들은 문서를 통해 중국 차단기협회에 수출에 대한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철강업계를 예로 들며 저압차단기에 대한 국내 관세품목분류를 신설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철강협회는 지난 2010년 7월부터 중국정부가 시행한 수출용 철강재에 대한 증치세 차등 환급 제도를 악용해 보론첨가강과 컬러강판으로 위장된 중국산 저가 철강재 수입이 급증하자 2011년 3월 열연·후판·철근 등 주요 품목에 대해 HS코드를 세분화해 줄 것을 기재부에 건의, 받아들여진 바 있다.
이와 함께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마련에도 열심이다.
일종의 보급형 차단기를 특화 생산해 중국산 가격에 맞춰 공급한다는 계획도 논의 중이다. 이는 수입되는 중국산 차단기 가격과 맞춰 유통업체와 건설사들이 중국보다 싸고 질 좋은 국산제품을 이용하도록 유인한다는 방침이다.
또 일부 저용량 차단기의 경우, 중국산과 동일한 가격으로 공급키로 하면서 중국 저가 수입제품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알루미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여재 슬라브를 활용해 생산 원가를 대폭 낮춤으로써 중국산 제품과 동일한 수준으로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업계 노력이 가시화되면 그동안 중국산을 사용해왔던 건설업계가 동일한 가격으로 국산 제품을 안정적으로 조달 받을 수 있게 돼 국내제품의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수출시장에서도 가격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원가부담을 감안하면 중국산 제품의 가격대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업체 임원은 “원자재 가격에 일희일비하는 차단기업계 특성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산 제품에 맞춰줄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싸면서 질 좋은 제품을 제대로 공급할 수 있으면 어느 정도 수입 방어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가격 혼란만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전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차단기 업계는 중국산 제품과의 정면승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중국 제품의 국내시장 진입이 본격화되기 전에 활발한 연구개발을 통해 양질의 제품을 개발, 시장을 지켜내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