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논의를 앞둔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확대 범위를 놓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국회, 정부 간 혼선이 지속되고 있다.

　부당 단가 인하 등에 대한 적용 기준을 확대하는 데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전체 산업에 적용하는 문제부터 피해에 따른 손실 배상액을 ‘3배’로 할지 ‘10배’로 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재계는 하도급 대금 결정과 부당 단가 인하 등에 대한 과징금을 ‘2배’로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 하도급법이 있는 상황에서 추가 제재를 강화하는 게 실효성이 낮다는 입장이며, 건설업계는 원·하도급 간 부당 단가 인하 등에 따른 제재 강화에 앞서 자재·장비업체 대금 및 근로자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할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이후 발의된 25건에 달하는 ‘하도급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 및 처리를 둘러싼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수위·정부 ‘10배’, ‘3배’ 놓고 엇박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1분과 국정과제 토론회를 열어 대기업의 횡포 시 최대 10배의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방안 등을 보고했다.

　경제1분과 보고는 박 당선인이 ‘손톱 밑 가시 뽑기’로 강조해온 중소기업 보호·육성에 중점을 뒀으며,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대기업의 횡포에 대해 피해금액의 10배까지 배상토록 규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대상은 ‘단가 후려치기’로 불리는 하도급 대금 부당 감액, ‘불법 리베이트’에 해당하는 경제적 이익 제공 강요, 하도급 업체 인력 빼가기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29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이 같은 인수위 업무보고에 찬물을 끼얹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세종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공정위 조직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한 데 이어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3배 정도로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대상에 부당 단가 인하를 포함하고 더 확대할 영역이 있는지 검토하겠다”면서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미국이 손해액의 3배까지 제재하는데 언론에서 제기된 10배 얘기는 와전된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인수위와 정부 간 의견 조율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공정위는 올 1분기 내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대상 등 세부사항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국회·기업 ‘3배’ 또는 ‘현행 유지’

　앞서 국회에서는 부당한 단가 인하 행위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도입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을 둘러싼 찬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불법행위에 대해 부당이득을 초과한 사회적 통제(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찬성 입장과 실손해 배상을 원칙으로 한 민법상의 손해배상책임 및 거액의 배상금을 기대한 소송 남발 등을 우려하는 반대 입장의 공존이다.

　해당 법률을 다루는 정무위 관계자는 “찬반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사업 현장에서 보이지 않게 이뤄지는 부당 단가 인하 행위 등은 하도급거래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애로사항이어서 제도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사안이라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찬성하는 쪽에서도 ‘실손액 10배’ 배상은 부정적 견해가 나오고 있어 손해배상액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덧붙였다.

　업계는 ‘과도한 손해배상제 도입’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하도급 대금보다 더 큰 손해비용을 물어야 한다는 염려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목표가 ‘자재·장비 등 건설근로자 임금체불 문제 해결’이 아닌 하도급사의 손실배상에만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100억원 규모의 공사에서 5억여원을 부당 감액해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따른 과징금을 받으면 벌점 등을 계산해 최대 6억원 정도 나오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10배로 확대 (적용)하면 50억원이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실정”이라며 “잘못한 부분은 분명히 인정해야 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지만 거액의 배상금을 염두에 둔 소송 남발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건설업은 자동차·전자산업과 똑같은 방식으로 법을 적용하는 데 무리가 있지 않느냐”면서 “2차 하도급사에 대한 피해를 방지하는 데 앞서 근로자의 임금체불 문제에 초점을 맞춘 동반성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의섭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불법행위나 불공정행위를 억제하고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확대)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원사업자의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이나 부당 단가 인하, 서면계약서 미교부 등에 대한 제재 규정은 하도급법에도 명시돼 있고,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 과도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건설산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원도급자의 부당 하도급 대금 결정이 아니라 자재·장비 대금 지급이나 근로자의 임금 체불”이라며 “하도급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자재·장비업체에 자재대금지급보증서 등을 교부하게 하고, 임금지급보증서를 하도급 계약 체결 시 원도급자에게 제출하는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형용기자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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