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지원하기 위한 ‘직접생산확인’ 제도가 애초 취지와는 달리 기술 벤처 기업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제도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다른 기업과의 협업으로 직접생산 확인 기준을 사실상 충족함에도 불구하고 등록 규정이 별도로 없는 운영상 허점으로 인해 공공시장 납품을 포기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기업계 A사는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20여개국에 1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전형적인 벤처기업이다.
2003년 설립 이후 매년 매출액의 10%이상을 R&D에 투자하며 12건의 특허, NET(신기술)인증·조달우수제품·성능인증 등을 두루 획득하며 기술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A기업은 지난해 3월부터 공공시장에서 갑자기 판로가 막혀버렸다.
2011년부터 관급 시장에서 한창 납품을 늘려가던 A기업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의 직접생산 확인기준’이다.
조달청은 지난해 3월 이전까지 ‘공장등록증’만 있으면 공공기관 납품을 허용했으나 3월부터 직접생산확인 증명서를 보유토록 기준을 강화했다.
중기청 고시에 따르면, 직접생산확인은 직접 제조 혹은 협업 승인을 받은 제품인 경우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체에 한 한다.
기술 벤처기업인 A사는 그동안 연구개발과 마케팅을 책임지고, 생산을 담당하는 협력업체와 협업계약을 맺어 공공 입찰에 참여해 왔다. 제조 부문만 협력업체에 맡기고 나머지 부문은 모두 A사가 담당하는 형태다. 이 때문에 현행 규정상 A기업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생산확인을 받을 길이 없는 셈이다.
A사는 조달 시장 납품이 원천 봉쇄되자, 6월 중기청으로부터 ‘중소기업간 협업사업계획 승인서’를 획득했으나 조달청과 중기청은 협업 참여업체에 대한 직접생산 확인을 둘러싸고 서로 유권해석을 떠넘기며 뒷짐을 지고 있다.
조달청은 “중기청으로부터 직접생산 확인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받아오라”는 입장이다.
반면 중기청은 “협업승인의 경우 최종 생산업체가 아닌 관련 업체에 직접생산 증명을 발급한 사례가 없고, 요청을 받은 적도 이번이 처음”이라며 유권해석을 꺼리고 있다. 현재로선 생산을 직접하지 않으면 직접생산확인증명서 발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총 8차례의 민원 제기에도 불구하고 관계부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현재 A사는 이미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어려운 상태다.
20억원 어치의 관급 계약은 물거품이 됐고, 올해부터 납품이 예정된 100억원 이상의 물량도 허공에 날아갈 상황에 처했다.
직접생산확인 제도는 애초 취지가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공공조달시장에서 대기업 제품이나 수입제품의 진입을 방지해 중소기업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A사의 경우처럼 제조 인프라를 협력업체에 의존하면서 기술력이나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벤처기업에겐 일종의 독소 조항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A사 대표는 “직접생산확인을 최종 생산업체에만 적용하는 것은 정부의 협업규정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글로벌 추세에도 역행하는 것”이라며 “기술벤처기업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모든 생산 설비를 갖춰야만 공공시장에 납품할 수 있다는 게 과연 합리적이냐”고 지적했다.
한편 중소기업청은 현재 생산설비와 공정, 인원 등 일정자격을 갖춘 중소업체에 한해 실태점검을 통해 직접생산확인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있다. 이 증명서를 소지한 기업만 공공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품질관리 강화를 명분으로 조달청이 제조 현장을 방문, 직접 생산시설을 확인함으로써 제조능력이 없는 부적격업체의 입찰 참가 또는 계약 체결을 방지하도록 규정을 강화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