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효율에너지기자재 인증품목으로 지정돼 있는 고압방전등(HID램프)과 안정기를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조명업계가 정부의 이런 방침을 3~4년 간 유예해 달라고 공식 요청하고 나섰다.
한국조명공업협동조합(이사장 강영식·이하 조명조합)은 최근 고압방전등과 안정기제조업체 협의체인 ‘고압방전등 및 안정기협의회(이하 고방안)’ 회원사를 대상으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지난 20일 에너지관리공단 앞으로 고압방전등과 안정기의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 전환 유예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조명조합은 공문에서 현재 전국 지자체의 상당수가 ESCO사업 방식을 활용해 관내 노후 보안등, 가로등(150~250W급 나트륨램프)을 35~70W급 세라믹메탈할라이드램프로 교체하는 사업을 예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압방전등과 안정기를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으로 전환할 경우 사업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 전환 시점을 3~4년 뒤로 연기하고, 제도시행 뒤 해당업체가 제도에 적응하는 사후관리 기간도 2~3년 뒤로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조명조합 관계자는 “여러 지자체가 별도의 예산이 필요 없는 ESCO사업 방식으로 기존 보안등을 LED조명으로 교체하려다가 비싼 가격 때문에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대통령선거 이후에 LED조명 대신 세라믹메탈할라이드램프로 교체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고효율에너지기자재 인증품목으로 지정돼 있는 고압방전등과 안정기를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으로 전환할 경우 혜택이 줄어들면서 사업시행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조명조합은 현재 교체사업을 예정하고 있는 지자체의 보안등이 최소 5000개에서 최대 2만개에 달하며, 경기도 광주시, 평택시(2차), 음성군, 원주시, 제천시, 보은군, 진천군, 증평군, 서산시, 논산시, 대전시, 상주시, 울산시 동구청, 포항시, 김천시, 순천시, 곡성군, 장흥군, 해남군, 무안군, 완도군, 정읍시, 고창군, 진도군, 제주시, 서귀포시 등이 ESCO방식을 활용한 보안등·가로등 교체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주장했다.
조명조합은 이와 함께 고압방전등과 안정기를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으로 전환할 경우 지자체가 한전에 부담하는 전기요금이 인상되면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한전의 기본공급약관시행세칙에는 계약전력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의 경우 정격용량을 100%로, 그렇지 않은 경우엔 115%로 산정토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70W급 메탈할라이드램프가 고효율기자재일 때는 계약전력이 70W(100%)로 적용돼 지자체가 2610원만 부담하면 됐지만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으로 전환되면 같은 제품의 계약전력이 81W(115%)로 상향돼 전기요금도 3002원으로 오른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5년 간 에너지절감을 위해 ESCO사업 방식으로 보안등, 가로등 교체사업을 추진했던 지자체의 경우 고압방전등과 안정기가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으로 전환될 경우 한전과 계약전력을 다시 산정해야 하기 때문에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명업계는 이에 따라 고압방전등과 안정기가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으로 바뀌면 수요 감소로 중소 조명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정부가 전환 시점에 맞춰 소비효율 1등급 제품과 표준소비효율제품을 조달청·공공기관의 우선구매대상제품, 의무사용제품 등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인 고압방전등과 표준소비효율을 만족하는 고압방전등용 안정기는 고효율조명기기에 추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명조합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파생모델(추가모델) 인증신청 시 시험소요기간을 단축하고, 시험수수료를 지원하거나 면제하는 방안도 요청했다”면서 “사실 수은램프, 메탈할라이드램프, 나트륨램프와 안정기의 경우 용량(W)별 대표규격을 인증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요처에서는 대표규격 이외의 규격도 납품 시 인증서 첨부를 요구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선 파생모델의 인증시간과 수수료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명조합은 이밖에도 조명연구원이 지경부, 에관공의 위탁을 받아 지난 11월 말 마련한 ‘HID램프 및 안정기 효율등급기준안’ 가운데 고압방전등과 안정기의 등급별 효율기준도 일부 수정을 요청했다.
한편 지식경제부는 올해 3월 에너지 효율향상 방안을 발표하면서 올 하반기에 고압방전등과 안정기 등을 고효율기자재 대상에서 에너지소비효율등급 대상으로 전환한다고 밝히면서 업계의 반발을 샀다.
이후 지경부와 에관공은 11월 말까지 ‘HID램프 및 안정기 효율등급기준안’ 마련을 위해 조명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기고, 12월 초에는 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전환 작업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방안의 한 관계자는 “보안등에 쓰이는 150W급 나트륨등을 70W급 세라믹메탈할라이드램프로 바꿀 경우 80W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면서 “또 세라믹메탈할라이드램프는 가격도 LED조명에 비해 저렴하고, 이미 성능검증도 끝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충분한 효용가치가 있는데, 갑작스럽게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