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페달을 멈추면 넘어지잖아요. 요즘처럼 건설경기가 나쁠 땐 공공사업이 그나마 버팀목인데 내년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자금난에 허덕이는 건설사들은 쓰러질수밖에 없습니다.”

　시공순위 30위권의 중견건설사인 A사 업무부장은 요즘 시름이 깊다.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이 회사는 올 연말 대규모 감원설이 나돌고 있다.

　A사 외에도 G사, S사, D사 등 대형부터 중견·중소 건설사 구분없이 10~30% 가량 구조조정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감원 칼바람을 견뎌내더라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신규 수주가 쪼그라들면 추가 감원이 불가피하다.

　전통적으로 성수기인 4분기와 비수기인 1분기 사이의 ‘수주 공백’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공공발주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 처리가 사실상 대선(12월19일) 이후로 미뤄지면서 내년초 공공사업도 ‘거북이 발주’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국회는 법이 정한 정부 예산안의 처리기한(12월2일)을 이미 넘겼다. 2003년 이후 예산안이 법정 처리기한을 지킨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내년초부터 예산을 조기집행하려던 정부의 구상도 틀어지게 됐다. 새해 공공발주를 기다리는 건설사 영업 담당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활력 대책회의를 열어 ‘2013년 재정집행 준비방안’을 논의했다. 내년 상반기 경기하강을 막기 위해 재정을 조기 투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법정기한 안에 예산안이 통과된다는 전제로 사전 준비를 12월에 끝내고 내년 1월부터 곧바로 예산을 집행한다. 둘째, 일자리, 사회간접자본(SOC) 등 서민생활과 직결된 사업 위주로 상반기에 예산을 집중 배정한다.

　특히 SOC 분야는 지출이 쉬운 계속사업 등을 중심으로 설계, 발주, 계약 등 집행을 위한 사전절차를 최대한 서둘러 추진하기로 했다. 예산집행 과정에서 사업별 수요를 결정하는 도로보수 등 총액계상사업은 세부시행계획을 연말까지 확정해 내년 초부터 집행하기로 했다. 내년 총액계상사업안 규모는 1조3000억원이다.　

　정부의 이같은 계획은 최소 1개월 이상 늦춰지게 됐다. 최종 예산안이 이달말에나 확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산안이 확정된 후 정부가 정상적인 집행준비를 하는데는 최소한 한 달 가량이 걸린다.

　실제 최근 4년간 1월 예산 집행률은 예산안 처리시기와 밀접하다. 올해 1월 예산 집행률은 9.7%(26조8000억원)로 2009년의 13.6%에 비해 무려 4%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올해 예산안은 법정기한을 한참 넘겨 지난해 12월31일 처리됐다. 그만큼 정부가 예산 조기집행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올해처럼 직년연도 마지막날 예산이 처리된 2010년의 1월 예산 집행률은 9.0%(24조4000억원)에 불과하다.

　박 장관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재정이 부진한 경제상황을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기일 내에 확정돼 1월초부터 즉시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허사였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는 그나마 해외수주로 버텨내고 있지만 중견·중소업체는 공공발주가 늦춰질수록 자금압박에 시달릴 것”이라며 “국회는 하루빨리 예산안을 처리하고, 정부는 예산집행 준비와 함께 회계연도 개시 전에 예산을 배정해 공공발주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11조7000억원을 비롯해 1998년(5000억원)과 1999년(1조원), 2010년(1조7000억원)에 회계연도 개시 전 예산을 배정한 바 있다.

　내년초 공공발주에 거는 기대는 대형업체와 중견·중소업체 간에 다소 차이가 났다.

　대형사인 H사 관계자는 “발주가 늦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공기연장에 따른 간접비 보상과 ‘공사비 삭감용’으로 전락한 총사업비 검토 등을 개선해 정부가 공사비 ‘제 값 주고, 제 값 받기’에 각별히 신경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견업체인 S사 관계자는 “턴키·기술제안보단 중견·중소업체들이 수주할 수 있는 최저가낙찰제·적격심사 공사 물량이 연초에 많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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