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매출액 5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을 수급사업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입법화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27일 공정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마련, 28일까지 관계기관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개정안은 매출액 5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에 한해 하도급법 상 수급사업자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공정위가 공정거래협약 체결대상 중견기업을 ‘5000억원 미만’으로 한정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

　중견기업의 수급자 범위를 제한한 것은 중견기업 전체를 수급자로 인정할 경우 보호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하도급법의 입법 목적상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의 거래상 지위나 협상력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에는 논란의 불씨가 될만한 조항도 추가됐다. 원사업자 요건을 정한 조항(제2조 2항 3호)에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 중 직전 사업연도의 연간매출액이 제조등의 위탁을 받은 중견기업보다 많은 자’로 규정한 것이다. 풀어 쓰면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하도급 거래를 하는 중견기업보다 매출액이 적을 경우 하도급법 상 원-하도급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즉, 매출액 5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이라도 대기업집단 계열사보다 매출액이 더 크면 하도급법 상 수급자로서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대기업집단들이 중견기업보다 매출액 규모가 작은 계열사를 통해 우회해 하도급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고,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해질 우려가 있다”며 “해당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기업집단 계열 1664개사(금융·보험업 제외) 중 매출액이 5000억원 이하인 곳은 전체의 83.0%(1381개), 매출액 1000억원 이하인 곳도 68.6%(1142개)나 된다.

　이번 개정안을 놓고 건설 단체들은 입장이 엇갈린다. 전문건설업계는 개정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건설업계의 기존 도급체계를 무시한 개정안”이라며 “전문건설업체들이 대기업의 재하도급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한건설협회는 입장 표명을 유보한 상태다.

　재계를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개정안의 수정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연매출 1500억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수급사업자 범위를 대폭 줄이고, 하도급법상 보호범위를 대금지급 관련 사항에 국한하자는 것이 골자다.

　전익주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 사업팀장은 “하도급법 상 수급사업자는 중소기업을 갓 졸업한 후 성장통을 겪고 있는 기업으로 한정해야 한다”며 “중견기업으로 대상범위를 넓힌 공정거래협약 체결 효과를 지켜본 후 하도급법 개정을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공정위도 개정안을 조급하게 처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협약 체결 대상을 중견기업으로 확대하면서 이를 하도급법에 적용하는 방안에 대한 업계 의견을 듣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며 “업계 의견을 꼼꼼히 듣고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실제 입법 추진은 대선 이후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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