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신기술 제도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한 전력기술이나 외국에서 도입한 뒤 개량한 기술이 ▲신규성 ▲진보성 ▲현장적용성 ▲경제성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돼 보급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이를 정부가 보호해주는 제도다. 다시 말해 전력신기술 인증을 획득한다는 것은 전기사업법에 규정하는 전기시설물의 계획·조사·설계·시공 및 완공된 설비의 유지․보수, 운영·관리에 관한 새로운 기술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정부는 1997년 전력신기술 제도를 첫 도입하면서 업계의 기술개발 의욕을 고취하고, 전력기술의 발전을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력분야의 국가경쟁력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15년여가 지난 지금 일선 현장에서는 전력신기술 인증제도가 가진 문제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국감에서 노영민의원은 “기술개발 고취와 전력기술 발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전력신기술제도는 지정 과정에서 제도적 결함을 갖고 있다”면서 “현장에 부합하지 않는 신기술이 설계에 반영돼 잦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신기술 채택을 위한 뇌물 및 금품수수, 로비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본지는 전력신기술 제도와 관련된 최근의 논란을 짚어보고, 정부와 관련 유관기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지난 20일 충남 공주시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지난 9월 서광전기통신공사(대표 임희일)와 신안특장(대표 임용호)에서 신청한 ‘전주부착형 승강구동장치를 이용한 직접활선 배전설비 교체공사’ 현장 시연회가 열린 것.
이날 전기공사협회는 소속 회원들을 중심으로 전력신기술 현장검증위원회를 꾸려 시연회 현장을 지켜봤다. 협회 임·직원과 지역 업계 관계자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시연회는 서광전기통신공사가 직접 기술을 선보이고 참관자들이 궁금한 부분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공법을 미리 보여주는 게 뭐 그리 특별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발주기관이나 심사기관이 아닌 일반 회원들에게 전력신기술을 시연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더구나 신청 당시부터 안전성과 효용성 등을 이유로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공법인 만큼 참석자들의 관심도 매우 컸다.
전주부착형 승강구동장치를 이용한 직접활선 배전설비 교체공사 공법은 전주에 승강구동장치를 부착, 활선상태에 있는 전선을 들어 올려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작업자의 안전은 물론 시공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게 임희일 서광전기통신공사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전기공사협회 현장검증위원회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검증위원으로 참석한 13명 가운데 13명 전원이 “전력신기술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 전체적으로는 신규성과 경제성에 대한 평가가 박하게 나왔으며 안전성에 대해는 모든 검증위원이 한목소리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 참석자는 “기존 사용공구 및 장비를 조합한 것일 뿐 차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비의 안전성 등을 지적한 참관객도 있었다.
하지만 전기공사협회는 전력신기술을 심사하는 기관이 아니다. 전력신기술 관련 모든 심의는 대한전기협회에서 진행하고 있다.
전기공사협회의 검증위원들이 내린 평가는 신기술 지정여부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전기공사업계는 왜 전력신기술 제도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업계는 심사 과정에서 현장실사도 거치지 않고 해당 업체가 제출한 서류만을 가지고 심의하는 현재 구조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원가절감만을 목적으로 한 전력신기술이 시공현장에 적용, 작업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다한 기술료 등도 발목을 잡는다.
업계에선 과다한 기술료 지급으로 정부의 예산낭비를 초래하고, 전기요금 인상을 부추긴다는 점을 문제로 지목한다.
현재 전력신기술의 기술요율은 21%다. 유사신기술의 기술요율인 5%보다 4배나 많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신기술 지정을 로또에 비유하기도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시공과정에서 전력신기술이 새로 적용 될 때마다 기술을 개발한 기업은 기술료 등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시공하는 기업들은 제대로 된 품을 인정받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전력신기술 인정을 획득한 기업은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입찰에 우선적으로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해당 신기술에 대한 기술사용료를 청구할 수 있으며, 입찰에서도 가점을 받을 수 있다. 제품인 경우엔 신기술제품인증(NEP)에서 심사를 면제받는 등 혜택도 누린다.
말 그대로 전력신기술은 철저하게 신기술 업체들에만 유리한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