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엔지니어링업계에 관행화된 ‘구두 계약’에 대해 공정위가 첫 과징금 제제를 내렸다.

　그동안 서면계약서 지연발급에 대해 과징금 부과없이 시정조치만 해왔지만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칼을 빼들었다는 분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하도급업체로부터 납품을 받고서야 서면계약서를 발급하는 등 하도급거래 불공정행위를 한 7개 건축설계·엔지니어링업체에 시정명령·경고조치를 하고 모두 1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체별로는 서면계약서 55건을 미발급한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삼우건축)에 과징금 1700만원과 시정명령을 내렸고, 한국전력기술과 삼성SNS, 현대엔지니어링 등 3사에 시정명령을 조치했다. 서면계약서 지연발급 건수가 10건 미만으로 경미한 삼성엔지니어링, 포스코엔지니어링, 디섹 등 3사에 대해서는 경고조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우건축은 2009년 ‘국립생태원 생태체험관 건립공사 현상설계’ 공모에 참여하면서 하도급업체들이 설계용역을 마친 후 서면계약서를 발급했다. 하도급법은 하도급업체가 물품이나 서비스를 납품하기 전 서면계약서를 발급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전력기술은 설계변경으로 인한 추가대금을 발주처에서 지급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도급대금을 428일이나 지연해 지급하고 지연이자 1억4482만원도 주지 않았다. 삼성SNS는 발주처에서 현금 결제비율 39%로 대금을 받고도 하도급업체에는 현금 결제비율 16%로 대금을 지급했다.

　하도급법을 보면 발주처에서 지급받은 현금 결제비율 미만으로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

　유성욱 공정위 건설용역하도급개선과장은 “이번 조치는 납품 후 서면계약서 발급에 과징금을 부과한 최초의 사례”라며 “잘못된 구두발주 관행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에 제재를 받은 A사 관계자는 “업계 특성상 수주 준비단계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 과정에선 원도급사와 하도급사가 마치 하나의 컨소시엄처럼 리스크를 분담하는 시스템”이라며 “발주처와 원도급사가 사실상 초기 단계에 구두계약을 통해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원도급-하도급 관계만 철퇴를 내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유 과장은 “동일 사안에 대한 과거 시정조치 수준과 업계의 불가피한 현실을 고려해 제재 수위를 낮췄다”고 설명했다. 

김태형기자 k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