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사성폐기물 분류체계를 세분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고준위와 중·저준위 2가지로 나뉘어 있는 현행 분류체계를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 등 4단계로 변경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1년간 ‘리스크 차등접근법에 따른 방사성폐기물 분류체계 개선방안’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199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기준을 준용하고 있는 국내 방폐물 분류체계를 현 추세에 맞도록 개선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하반기 원자력정책연구사업 과제로 발주했다.
IAEA는 2009년 방사능 농도와 반감기를 고려해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 극단수명, 규제면제 등 6단계 분류기준을 권고했다. 이와 함께 고준위 폐기물을 심지층 처분으로, 중준위는 보강된 지층 처분, 저준위는 천층 또는 동굴 처분 방식, 극저준위는 천층처분 방식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이처럼 기준을 세분화한 까닭은 원전 운영 규모가 확대되면서 규제 면제 기준을 상회하는 방사능 준위의 폐기물이 대량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저준위 부문 분류를 세분화함으로써 위험도에 따라 처분방식을 달리하고 방사능 오염 정도가 미미한 방폐물에 대해서는 소각, 매립 또는 재활용의 방법으로 자체처분하도록 규정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셈이다.
각국은 이를 바탕으로 자국 환경에 맞는 방폐물 처분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해외사례를 보면 프랑스는 폐기물에 함유된 핵종의 방사능 준위와 반감기에 따라 고준위, 장반감기 중준위, 장반감기 저준위, 단반감기 중·저준위, 극저준위, 극단반감기 폐기물 등 6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원전 운영과정에서 나오는 저준위 폐기물 ▲핵연료주기 시설에서 발생하는 우라늄 폐기물, 초우라늄 폐기물 ▲연구기관 및 방사성 동위원소 기관에서 나오는 방사성동위원소 폐기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에서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 등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방폐물 분류기준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원자력 이용이 확대되면서 방폐물 발생량도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에너지기본계획상으로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확대할 계획이며, 방사성 동위원소 이용기관 수도 계속 늘어 현재 4200곳이 넘는다. 이대로 가면 건설 중인 경주 방폐장만으로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중저준위 폐기물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제2의 방폐장 부지를 추가로 확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국내 기준으로는 방사능 오염 정도가 낮은 극저준위 방폐물도 중저준위로 분류돼 건설비 또는 운영비가 비싼 동굴처분 시설이나 공학적 천층처분 시설에 처분할 수밖에 없다는 맹점이 있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국내 방폐물 분류체계를 3단계로 나눌 경우 평균 처분단가가 드럼당 736만원에서 592만원 수준으로 떨어져 약 20% 절감효과가 있는 것으로 자체 분석했다. 분류에 따라 처분방식을 달리함으로써 처분장 건설비용과 부지 확보의 어려움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해용 KINS 박사는 “방폐물 분류체계를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 등 4단계로 바꾸려 하고 있다”며 “앞으로 원전을 운영하거나 해체하는 과정에서 폐기물이 많이 발생하게 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방폐공단 관계자는 “분류기준이 세분화되면 현재 중저준위 폐기물 가운데 절반가량은 극저준위로 분류가 가능해 처분 부담을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