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사고를 예방하려면 우리나라에도 NERC(북미 전력계통 신뢰도 관리기구)와 같은 정부 전력기술 지원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4일 전기학회 주관으로 열린 ‘9.15 순환정전 그 이후 1년’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이근준 전기학회 전력계통연구회 위원장(충북도립대 교수)은 주제발표를 통해“지난해 발생한 9.15 순환정전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국가전력 신뢰도를 관리하는 기관이 없었던 것”이라며 “현재 정부와 한전, 전력거래소가 전력정책을 수립하고 있지만, 보다 전문적인 기관에서의 전력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미국의 경우 2003년 대정전 이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에 NERC를 설립하고, 이곳에서 대전력망의 신뢰도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표준개발부터 실행, 감시, 인력양성까지 총괄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는 NERC와 같은 전문적인 기술지원기관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또 “사고 발생 이후 전력거래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는 못한 게 현실”이라며 “전력산업기반기금에 대전력망의 신뢰도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표준개발과 실행, 감시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다른 주제발표자인 유재국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유 조사관은 “EMS가 계통주파수 유지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 EMS의 역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전력거래소 역시 EMS의 역할을 부풀려 스스로의 존재감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 조사관은 또 “예비력 계산에 있어서도 전력거래소는 예비력을 계측하는 게 아니라 이론적으로 계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전력거래소는 앞으로 보다 투명하게 자료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제발표에 이어진 토론회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조종만 전력거래소 처장은 “유 조사관이 EMS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서 “EMS는 실시간 전력계통 감시가 가능하고, 발전기 출력제어와 배분, 전력계통 분석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조 처장은 또 “거래소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EMS가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면서 “EMS에 관한 정보도 정보공개위원회를 거쳐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고 유 조사관의 주장을 반박했다.
김광호 전력거래소 차장도 “그동안 EMS가 해외에서 3차례나 도입됐고, 현재는 한국형EMS가 순수국내 기술력으로 개발된 상황에 이르렀다”며 “유 조사관이 직접 거래소를 방문해 의견을 들었다면 상태추정이 오프라인에서 돌아간다든지, 거래소가 5분 평균 과거부하를 가지고 계통을 운영한다든지와 같은 오해는 상당부분 해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건중 충남대 교수는 “전력거래소는 EMS를 운영하는 전문가집단이지만, 실제 EMS와 관련한 전문가는 국내에 거의 없다”며 “앞으로 EMS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규제 에너지경제연구원 팀장은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지적했다.
정 팀장은 “전력기반기금 가운데 전력효율향상과 전력부하관리 등 수요관리 기금에 사용되는 비중이 너무 낮고, 특히 이로 인한 전기요금 절감효과에 대한 분석이 전혀 없는 게 아쉽다”며 “앞으로 전력기반기금의 사용처를 모두 공개해서 국민들의 불신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연 한전 계통계획팀장은 “9.15 정전 이후 500만kW 이상 예비력을 확보하는 등 다소 과잉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전력수급 불안으로 인한 정전은 예외적인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한 예비력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전정희 국회 지경위 소속 의원과 남호기 전력거래소 이사장, 구자윤 전기학회 회장 등 80여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