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시설공단이 호남선 고속철도 신호공사를 발주하면서 입찰참가자격을 과도하게 제한, 사실상 수의계약을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철도시설공단은 지난 8일 호남고속철도 오송~공주간 신호설비 신설공사(설계금액 103억4820만원)와 공주~익산간 신호설비 신설공사(설계금액 150억6213만원), 정읍~광주송정간 신호설비 신설공사(설계금액 181억6769만원) 등 총 4건의 신호공사를 발주했다. 입찰참가자격은 최근 10년간 1대 이상의 전기선로전환기 설치가 포함된 차상신호방식(ATC, ATO, CBTC, ATP)의 철도신호공사 시공실적을 보유한 업체’로 제한됐다.
또한 동 공사의 적격심사기준에서 설계금액 대비 100%이상의 실적을 보유한 기업만이 만점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시공업계 일각에서는 철도시설공단이 차상신호방식 실적을 보유한 업체로 자격을 제한하는 등 중소업체들의 입찰 참여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차상신호방식에 대한 실적은 고속철도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만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에서도 100억원 이상의 차상신호공사 실적을 올린 업체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이 입찰에 참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업계에선 철도시설공단이 제시한 입찰자격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전체 1만3000여 전기공사업체 중 16~20곳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나마 이들 기업 중에서도 적격심사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업체는 5곳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시공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발주규모가 큰 정읍~광주송정구간(181억)과 공주~익산구간(150억)의 경우 만점으로 낙찰받을 수 있는 업체는 1~2곳에 불과해 사실상 수의계약이나 다름없다는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이번에 발주되는 4건의 호남고속철도 신호공사에는 한 업체가 하나의 공구에서만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1사1공구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일부 실적 보유업체들의 나눠먹기식 입찰이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공동도급 관련 철도시설공단의 일관성 없는 발주기준 역시 도마위에 올랐다.
국가계약법령상 공기업의 경우 추정가격 284억원 미만의 공사는 지역의무공동도급이 가능하지만 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4건의 공사 중 2건은 지역의무공동도급 대상으로, 나머지 2건은 지역업체에 가산점을 주도록 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전기공사업체 한 관계자는 “이렇게 과도하게 입찰을 제한하는 것은 다른 공기업의 사례와 비교할 때 너무 지나친 처사”라며 “철도시설공단의 발주형태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 소수의 업체만이 신호공사를 독·과점할 우려가 있다”고 항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공단의 과도한 입찰참가자격 제한은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및 동반성장 정책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국가계약법 상 제한경쟁입찰의 참가자격을 제한하는 경우 난이도와 규모, 수급상황 등을 적정하게 고려해야 하지만 이번 입찰처럼 발주자가 재량권을 이유로 입찰 참가의 문을 과도하게 좁히는 것은 중소업계에 큰 타격”이라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철도시설공단 측은 업계에서 주장하는 ‘나눠먹기 식 입찰’은 절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2007년도 신호공사 발주때부터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왔다”며 운을 뗀 뒤, “입찰 문턱이 갑자기 높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2010년 당시 시공실적에서 기준을 다소 완화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이달 초 차상신호방식 철도신호 공사 실적을 보유한 업체 중 전산에 등록된 곳이 16곳이었고, 현재까지 접수를 받은 결과 20곳을 넘어섰다”면서 “시공실적이 하위권에 위치한 기업이라 해도 지역업체를 잘 활용해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충분히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소업체들의 요구대로 실적을 다 풀어주거나 공구를 세분화 할 경우 관리 범위가 너무 넓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며 “시공품질 하락으로 인한 피해는 누가 책임질 수 있나”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철도산업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철도시설공단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중소업체들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철도산업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철도공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담보로 하는 만큼 무분별한 자유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특히나 고속철도의 경우 신호 관련 업체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와 경쟁력이 투입돼야 하는 만큼 입찰 참가기준이 다소 강화될 소지는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