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찰제와 덤핑입찰 등으로 얼룩진 현행 발주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최고가치(Best Value) 낙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각 발주처가 처한 상황을 감안, 공사발주의 재량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터져나왔다.
지난 13일 김희국·나성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공사 발주제도 및 대금지급시스템 개선 토론회’에선 최저가 낙찰제 등 현재 발주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 진행됐다.
이날 ‘공공 건설공사 발주제도의 합리적 개선방향’에 대해 발표한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은 “실적공사비는 예정가격 이하로 투찰토록 강제된 상황에서 계약단가가 생성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락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이어 “가격만을 기준으로 입찰점수를 매기는 최저가 낙찰제는 근본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다”며 “제 값받고, 제대로 시공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입찰자 평가기준 등이 기재부의 회계예규에 의해 경직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지목하며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적격심사 평가 등 심사시 발주자에게 재량권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진행된 종합토론 시간에도 현행 발주제도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놓고선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홍순빈 GS건설 상무는 “빈번한 정책변경으로 일선 현장에서는 혼란이 야기되고, 제도의 신뢰성 또한 땅에 떨어졌다”면서 “발주제도에 대한 명확성과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각 발주처에 획일적인 기준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공사 특성에 따라 발주처에 재량권을 부여하는 방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저가 낙찰제의 대안으로 지목된 ‘최고가치 낙찰제도’에 대해선 “최저가 낙찰제와 유사한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홍 상무는 “현재의 우리나라 건설 환경이 최고가치 낙찰제도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 있는지 의문”이라며 “100~200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는 공공공사 발주에서 이를 어떻게 걸러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백석근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발주제도와 대금지급시스템에 대한 논의의 기본은 결국 ‘제대로 돈 받고, 제대로 시공하자’는 이야기”라며 “최고가치 낙찰제가 도입되더라도 인력과 자재, 장비 등에 대한 적정량과 적정가격이 확보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도 전반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적정 임금 보장 등 중요한 문제가 빠져있다”고 쓴소리를 냈다.
김한수 세종대 교수는 ‘데자뷰’, ‘시한부’ 등의 단어를 언급하며 “최저가 낙찰제와 대금지급시스템 등에 대한 논의는 지난 수십년동안 되풀이된 문제”라고 지목했다.
제도 개선과 더불어 발주자의 역량을 높이는 데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김 교수는 “제도 개선을 논의하기에 앞서 공사를 발주하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과연 스마트한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면서 “발주자가 올바르게 처신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제도가 아무리 좋아져도 발주자의 역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소모적 논쟁만 계속될 것”이라며 “이젠 건설업계의 생존이라는 명분을 넘어 국민의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채규 국토해양부 건설경제과장은 “현행 발주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과장은 이어 발주기관의 역량 강화를 전제로 자율성을 보장하고, 입찰 심사의 변별력을 높여 경쟁력 있는 업체가 배출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발주기관이 임의로 예정가격을 삭감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도 다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고가치 낙찰제가 현행 발주제도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재신 기획재정부 계약제도과장은 최저가 낙찰제는 예산절감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며 공사난이도 등을 고려해 다양한 발주제도를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과장은 “최고가치 낙찰제는 보편적인 가치일 뿐 최저가 낙찰제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최고가치 낙찰제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