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저장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전력저장장치가 정부 지원에 힘입어 본격 산업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 약 2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전력저장장치는 리튬2차전지와 같은 소형 2차전지를 대형화한 것으로, 남는 전력을 저장해 피크시간이나 정전 시 비상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력공급장치다. 전력피크 관리에 효과적인 수단이자 신성장동력산업으로서도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7월 27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확정된 ‘대용량 전력저장장치 보급촉진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전력저장장치 산업 육성을 비전으로 설정하고, 2020년까지 200만kW에 달하는 전력저장장치를 보급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불안한 전력수급에 안정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전력저장장치, 왜 뜰까?

전력저장장치는 생산 후 바로 소비해야 하는 전기의 특성을 뒤엎은 차세대 에너지 저장기술이다. 저장이 어려운 전력의 특성 상 최대 수요에 맞춰 발전설비가 구축돼 있기 때문에, 수요가 적을 때 버려지는 전기를 저장해서 사용할 수 있다.
미국 파이크리서치사에 따르면, 2010년 전력저장장치 시장규모는 2조원이었지만 2020년이 되면 47조원으로 급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저장용량도 지난해 120만kW에서 2020년이면 2010만kW로 약 16배가 성장할 전망이다.
진창수 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저장PD는 “남는 전력을 저장해 과부하 또는 비상시에 이용하면 피크부하의 분산, 발전소 건설, 송전선로 설치 등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여름·겨울철의 전력피크와 대규모 정전사고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전력저장장치는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보급에도 필수적이다.
전력저장장치가 도입되면 날씨에 따라 품질이나 발전량이 일정치 않은 신재생에너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제주에서 855kWh급 신재생에너지 발전용 전력저장장치를 실증하고 있다”며 “풍력발전기와 전력저장장치의 결합을 통해 신재생에너지원 보급 확대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열쇠를 전력저장장치가 쥐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 중심 산업화 경쟁 가속…국내선 삼성SDI, LG화학이 주도

현재 전력저장장치 산업은 미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초기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단계다. 이들 나라에서는 전력저장장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력수급 안정화, 관련 산업육성 차원에서 보급사업을 추진 중이다.
최갑홍 한국전지산업협회 부회장은 “일본은 올해부터 5000억원 규모의 설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력저장장치 산업 육성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세계 최초로 전력저장장치 설치 의무화 제도를 시행하는 등 시장 선점에 발빠르게 나서는 모양새다. 캘리포니아주는 2020년까지 공급전력의 5% 이상을 전력저장장치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업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구에서 ‘10kWh급 리튬이온전지 에너지저장시스템 실증’ 사업을 벌이고 있는 삼성SDI는 작년 10월 일본 니치콘사와 가정용 전력저장장치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올해 6월에는 독일 카코(KACO) 사와 전력저장장치 공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며 “세계 최고의 리튬이온 2차전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력저장장치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LG화학도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최대 전력사인 SCE에 가정용 ESS배터리를 납품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전력엔지니어링사인 ABB와 메가와트(MW)급 ESS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LG화학 우병민 과장은 “올해 말까지 SCE에 ESS배터리 공급과 실증을 진행하고, 추후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대량공급과 양상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보급 촉진 주력…지원 방안 내놔

정부는 27일 전력저장장치 보급 촉진을 위해 ▲초기시장 창출 지원 ▲인센티브 제도 도입 ▲전력저장장치 인증제도 도입 ▲전력저장산업의 신성장동력화 주력 등의 지원책을 내놨다.
이에 따라 공공건물부터 전력저장장치 설치가 확대될 방침이다. 상업용 건물, 데이터 센터 등 전력다소비 시설에도 설치를 유도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된다. 정부는 초기 투자비용 절감을 위해 전력저장장치를 에너지절약시설 융자사업 지원대상에 포함해 금융 조달을 지원하는 한편, 에너지절약시설 투자세액공제 대상으로도 추가해 설치 비용의 10분의 1을 소득세 또는 법인세에서 공제하기로 했다.
더불어 전력저장장치 산업의 신성장동력화를 위해 석·박사급 고급인력 양성을 추진하고, 자격검정 시험을 통해 실무적용이 가능한 현장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송유종 지식경제부 에너지절약추진단장은 “정부와 업계의 역량을 결집해 전력저장장치 초기 시장 창출에 대응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전력수급 안정화에 보탬이 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전력저장시장 확보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튬이온 2차전지, 안전성 문제 없나

전력저장장치가 빠르게 산업화되고 보급 촉진 방안 등이 마련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력저장장치 산업은 리튬이온 2차전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리튬이온 2차전지는 과거 폭발 등의 사고가 나는 등 안전성이 문제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에 따르면 2003년~2010년 사이에 일어난 리튬2차전지 사고는 국내외를 합쳐 총 42건 내외 정도다. 2009년에는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폰도 폭발사고가 발생했고, 최근에도 저상 전기버스의 내부 시연 중에 리튬2차전지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업계 전문가는 “외국에서는 다양하게 실증사업을 벌이고, 실증이 끝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급을 시작하는데 우리나라는 뭐든 ‘빨리빨리’를 중시하는 것 같다”며 실증사업과 보급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려는 현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LG화학 우병민 과장은 “전력저장장치에는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며 “안전성을 강화한 분리막(SRS·Safety Reinforced Separator)을 적용하는가 하면, 배터리관리시스템(BMA·Battery Management System)이 배터리 상태를 항상 체크해 이상 발생시 자체 차단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전력연구원 장병훈 박사도 “전력저장장치에 들어가는 리튬이온배터리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며 “그 부분은 이미 검증을 하고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일본의 인증기준을 활용해 안전 인증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올해 10월부터는 PCS(Power Condition System)에 대해 KC인증을 시행하고 이후 단체표준을 통해 리튬전지에 대한 인증기준을 마련, 국가 또는 국제 표준과 연계한다는 계획이다.
박위규 지식경제부 사무관은 “국내 전력수급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보급과 실증을 동시에 진행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실증사업은 안정성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기술 확보나 효과 검증 등과 관련있다”면서 “전력저장장치는 엄격한 안전 인증기준을 통과한 제품에 대해서만 보급할 것이기 때문에 안전성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