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과천 정부청사는 매일 2시간 가까이 냉방공급을 중단하고 있다. 반포동의 서울조달청과 공정거래위원회는 11일부터 화장실 내 손건조기 작동시키지 않는다. ‘개인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 때이른 더위로 전력 여유분이 비상조치를 발동해야 하는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국가전력비상대책의 일환이다.

　온 나라가 전력 고갈에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경제팀의 맏형인 기획재정부가 한국전력공사의 전력 부하율이 외국보다 우수하다는 평가자료를 내놔 빈축을 사고 있다.

　재정부는 8일 ‘우리나라 공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돋보여…’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전의 전력산업 투자효율성을 나타내는 부하율(평균전력 사용량/최대전력 사용량)도 77.4%로 선진국 평균(64.5%)을 웃돌았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경영평가단(단장 최종원 서울대 교수)이 지난해 기준으로 16개 공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최초로 평가한 것이다. 재정부는 이를 근거로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우리 공기업의 서비스는 세계최고’라는 생각이 사실로 나타났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턱없이 부족한 전력 공급 상황과도 다르다.

　무엇보다 지난해 9·15 정전사태 이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공포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전력 부하율이 선진국보다 높다’는 평가를 내린 재정부의 판단 능력이 의심받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재정부는 같은 자료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자력발전소가 고장 등에 따른 발전손실률(비계획손실량/발전가능량)이 0.41%로 원전 10기 이상을 보유한 12개 나라 평균(4.79%)의 11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일본의 원전 발전손실률이 10% 넘게 치솟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비교한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같은 분석은 수치로 보여지는 지표를 바탕으로 한 만큼 현실의 다양한 배경과 돌발변수를 모두 반영할 순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 경제팀의 리더인 재정부가 ‘숫자놀음’에 빠져 현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번번히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정부 수장인 박재완 장관도 이로 인해 설화(舌禍)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박 장관은 지난해말 정부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10월 국내 취업자 수가 전년 같은 달보다 50만1000명 늘었다”며 ‘고용대박’이란 표현을 써 논란이 됐다. 현실을 모르고 통계에만 매달린 결과다. 당시 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용률이 60%도 안 되는 상황에서 수많은 청년실업자와 비정규직이 고용대박 발언을 듣고 얼마나 분노하고 실망할지 모른다”며 “아무 생각 없는 장관”이라고 질타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말이 있다. 통계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경구다. 유럽발 재정위기의 중심에 있는 그리스는 유로존 회원권을 얻으려고 통계당국이 나서 재정적자 규모를 줄였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 큰 망신을 당했다.

　양날의 검처럼 유용하기도, 때론 위험하기도 한 게 통계와 숫자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시대다. 숫자놀음을 벗어난 경제당국의 냉철한 판단이 절실한 때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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